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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Park Chung Hee Presidential Museum
농업개발
  • 1960년대 우리나라는 국민 대다수가 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보릿고개’는 배고픔의 대명사였다. 매년 겪어야 했던 식량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주식인 쌀의 신품종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단위당 생산량이 다른 품종들보다 30%나 높은 통일벼였다. 일반벼는 이삭 당 낱알이 80~90개인데 비해 통일벼는 40%가 더 많은 120~130개가 생산되었다. 통일벼는 ‘주곡의 자급달성과 녹색혁명 성취’라는 오랜 집념이 결실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1975년 주곡인 쌀의 자급자족을 이룰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