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구미보통학교와 대구사범학교를 거쳐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시절에 이르기까지 호연지기를 기르며 걸어온 청년 박정희의 흔적과 기억들을 각종 자료와 모형, 영상, 증언청취 등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연출하였으며
2년 7개월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써의 활동상과 제 5대 대통령으로 민족중흥의 길에 나섰던 박정희 대통령의 당시 상황을 자료, 사진, 멀티 영상 등으로 구성하였다.
-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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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구미의 명산 금오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상모리는 1910년대 당시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가난한 농촌 마을 중 하나였다. 1917년 11월 14일 박정희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소년시절 박정희는 또래보다 작은 체구였지만 대추방망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야무지고 통솔력 있는 당찬 소년이었다.
- 호연지기를 기르며 꿈을 키워 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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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학교 시절 박정희는 ‘나팔의 1인자’라고 불릴 정도로 나팔을 잘 불었다.
문경보통학교 교사시절에는 마을 청년들을 모아 악단을 만든 뒤 출장공연까지 다니기도 하였다.
나팔은 박정희에게 친구 같은 존재였고 퍼져나가는 나팔 소리와 함께 가슴 속 깊이 품고 있던
군인의 꿈을 키워 나갔다.
- 새로운 국가건설에 나서다
- 5ㆍ16혁명에 성공한 군부는 5월 19일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바꾸고, 정치ㆍ경제ㆍ외교ㆍ사회ㆍ문화 등 전반에 걸쳐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경제기획원 설치와
경제 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였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5월부터 제3공화국에 들어선
1963년 12월까지 2년 7개월 동안 경제발전과 산업화 그리고 수출진흥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