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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Park Chung Hee Presidential Museum

시장·기업·정부 ‘3위1체’로 국가 발전

  • 2026.10.14

대한언론 특별기획

박정희 경제기적 재조명 ⑬

 

좌승희 박사

아주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전회에서 박정희의 경제 발전사상이 자유시장경제의 틀 위에 서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냐 아니냐 하는 논란이 있지만, 이 문제는 차회의 주제로 돌리고 이번 회에서는 이승만의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어떻게 박정희의 경제 발전사상과 만나 대한민국의 건국사상(이런 개념이 가능할 수 있다고 동의한다면)이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전희에서 짧게 언급한대로(전회 그림 참조) 박정희는 이승만의 자유민주, 시장경제 사상을 이어받고 여기에 자본주의의 핵심인 기업경제 사상과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혹자는 이를 비민주적이라 하지만 최근의 노벨상 수상자들도 이런 정부가 경제발전에 칠수적이라고 증언한다)를 합친 새로운 국가 발전사상인 시장, 기업, 정부의 삼위일체 국가 운영체제를 창출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경제번영의 전제인 박정희의 경제적 차별화 경제질서는 바로 반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박정희와 이승만은 또한 반공사상을 공유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승만과 박정희는 국가번영을 위한 건국사상 체계를 함께 새로이 제시한 셈이다.

이승만의 자유주의 사상은 아주 뿌리가 깊어 보인다. 그가 도미 유학 전 투옥상태에서 집필한 ‘독립 정신’은 서양의 애덤스미스의 사상에 뒤지지 않는 시장경제 사상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승만이 1910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일찍부터 당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풍미하던 공산주의 사상의 문제점을 통찰하였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1917년 볼셰비키혁명으로 모든 인간에 경제적 평등을 보장한다는 기치 아래 소련 공산제국을 건설한 후 카를 마르크스의 경제 평등주의 사상이 많은 호응을 받고 있던 때였다.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서 하와이에 체재하며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1913년 9월 20일에 ‘태평양 잡지’(The Korean Pacific Magazine)를 창간했다. (후에 ‘태평양 주보’로 제호 변경) 그는 1923년 3월에 이 잡지에 짤막하지만, 당시로서는 너무나 통찰력 있는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이라는 논고를 출간하였다. 이는 소련 출범 겨우 6년 후에 쓴 것으로 , 당시 잘 나가는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너무나 일목요연하게 통찰하였는데, 오늘날 공산주의 비판의 교과서가 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의 1948년 ‘노예에의 길 (The Road to Serfdom·1944.3, Routledge, England)’이 출간되기 25년이나 앞서 이미 공산주의의 문제점과 향후 민주정치가 안게 될 문제점을 너무나 정확히 지적하였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민간 해체 · 청산하는 공산주의 방식 배척

기업 육성 되레 집중 동반성장 실현 박차

 

 

“공산당이 <적당>한 점으로서, 민주주의가 반상의 차별을 없애 정치적 평등은 실현하였으나 빈부의 차별은 여전한데, 공산당의 평등주의가 이것을 없이하여 다 균평하게 하자 함이니, 어지하여 이것을 균평히 만들 것은 딴 문제이거니와, 평등을 만들자는 주의는 대저 옳으니 이는 적당한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이 <부당>한 점은 (1) 재산을 나누어 가지자 (2) 자본가를 없이 하자 (3) 지식계급을 없이 하자 (4) 종교단체를 혁파하자 (5) 정부도 없고 군사도 없으며 국가사상도 다 없이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이승만 박사가 실천적 자유주의 사상가로서 당대의 세계 최고의 지성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우리 국민도 이점을 알고 널리 알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 박사가 정치학자로서 단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과제를 던진 셈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미완의 과제로 남았었고 운명적으로 그 뒤를 이은 박정희의 제일의 해결과제가 된 셈이다.

이승만의 건국이념 위에 선 박정희 시대는 자본주의 경제 운영의 새로운 사상을 창안하여 당대 최고의 동반성장 경제의 기적을 실현함으로써 세계에 어떻게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의 교훈을 제시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 성공의 핵심은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기업의 해체·청산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기업육성이 바로 동반성장 실현의 열쇠였음을 증명하였다는 점이다. 이로써 이승만과 박정희가 함께 실현한 (전회에서 제시한)삼위일체 경제발전 사상이 바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한국의 건국사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전회(2회)에서 살펴본대로 2차대전 이후 공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싸움에서 그들의 평등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자본주의 경제를 평등하게 만든다고 재분배 복지국가를 지향해온 자유 민주주의 진영이 오늘날 뜻밨에 저성장·양극화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아직도 “어떻게 경제를 균평하게 만들 것인지”하는 이승만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있었던 셈인데, 그 답이 바로 당대 최고의 동반성장을 실현했던 한국의 건국사상에 있음을 이제 깨닫고 배워야 할 일이다.

 

2026.8.1.(토) 대한언론 4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