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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된 이유는? ( 2017-07-28 )

특별기고  / 외국인 출신 한국인이 본 박정희 대통령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된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를 살리고 국가를 발전시킨 인물이다. 박정희는 위대한 사람이다. 중국이 오늘날 잘살게 된 것도 박정희를 공부했기 때문에 저렇게 잘 사는 것이다.

 

 


인요한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


[편집자 주] 유진벨 재단은 북한 주민 치료와 결핵 퇴치 등 인도적 차원의 대북 의료 지원사업을 벌이는 단체다. 유진벨 재단의 씨앗은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였던 유진벨(한국명 배유지)이 1895년 4월 8일 한국에 파송되면서 뿌려지기 시작했다.
유진벨은 호남 지역에 자리를 잡고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광주와 목표 지역에 20여 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광주에 수피아 여학교와 숭일학교 설립, 목포에는 정명학교와 영흥학교를 세웠으며 광주기독병원도 설립했다.
그의 사위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1912년 군산에 도착하여 전주 기전여고와 신흥고 교장을 지내면서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1926년 군산에서 태어난 윌리엄 린튼 선교사의 셋째 아들 휴 린튼(한국명 인휴)과 부인 베티 린튼(한국명 인애자)은 평생 전라도 농촌과 섬에서 지내며 결핵 퇴치 운동에 앞장섰다.
그의 아들인 인요한 씨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현재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유진벨 가문의 의료 사업을 5대째 이어오고 있는 인요한 씨는 의료 봉사 차원에서 북한을 넘나들며 남북한의 이질적인 현실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인요한 씨는 한국이 잘 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박정희 대통령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기고문을 소개한다.

 


나는 한국에 파송된 미국 선교사의 4대손이다. 나의 선조들은 한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그들의 인생까지도 바쳤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한국의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한국인들이 베풀어 준 따뜻한 정과 어른들이 가르쳐주신 삶의 지혜와 가르침은 내가 한국에서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이다. 이 넘치는 사랑에 더해 한국은 나에게 ‘한국인’이라는 국적까지 선물해주었다. 한국은 나의 육적(肉的)·영적(靈的)인 고향임에 틀림없다.

나는 의료 문제로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언젠가 북한의 안내원이 나에게 “남조선이 우리보다 좀 앞선 것이 왜 그런지 얘기해보라우!”라고 말했다. 나는 남한을 일으킨 힘은 세 가지라고 말했다. 

 

첫째, 우리가 잘 사는 까닭은 박정희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를 살리고 국가를 발전시킨 인물이다. 박정희는 위대한 사람이다. 중국이 오늘날 잘살게 된 것도 박정희를 공부했기 때문에 저렇게 잘 사는 것이다. 물론 인권문제를 논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또한 역사에 평가받아야 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시 기본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 문제, 사람들이 보릿고개에 허덕이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했던 당시 사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이 잘사는 이유는 우리 근로자들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 1년이면 80% 이상이 새 차를 사고, 5년이면 80%가 새 집을 마련한다. 미국 사람들은 30년이 되어도 그걸 못 한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근면 성실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과거에 구로공단에서 16시간씩 일했다. 잘 살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는 목표로 16시간씩 공장을 돌리고, 심지어 여자들이 머리카락까지 잘라서 팔았을 정도로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다.


셋째, 한국이 잘사는 이유는 한국의 어머니들 때문이다. 근면 절약정신과,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희생을 마땅히 여겼던 우리들의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북한의 안내원이 말했다.
“그게 아니고 남조선 아이들은 미국 뒤에 줄을 섰고, 우리는 소비에트 러시아 뒤에 줄 서가지고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결국 줄을 잘 서서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반문했다.
“그러면 필리핀은 100년 전에 미국 뒤에 줄을 섰는데 왜 이렇게 못 살죠?”라고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분명 강점이 있다. 민족적, 유전적으로, 또 어른들에게 보고 배운 지혜와 지식의 유산이 있다. 그러나 약점도 존재한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로 편이 나뉘어 있다. 성숙하면 타협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조금씩 서로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좀 극단적이다.


링컨은 박정희보다 더 심한 독재를 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존경하는 링컨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보다 몇 배나 더 심한 독재를 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신문사 300여 개를 폐쇄했고, 주 의회 의원들을 재판도 하지 않고 연금 시켰다. 대법원장을 불러 “당신 까불면 감옥에 넣어 버리겠다”고 협박도 했다.


남북이 나눠지고 전쟁이 날 것 같으니까 링컨조차 그런 극단의 처방을 냈다. 미국 사람들도 링컨이 잘못한 부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땅 속에 묻어 버렸다. 워싱턴 링컨기념관에 가보면 링컨이 예수님 다음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되어 있다. 미국 사람들은 한 인간의 업적을 평가할 때 ‘시대성’을 감안한 평가를 하는데 반해 대한민국 사람들은 당시의 ‘시대성’은 배제하고 오늘의 잣대로 옛날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것이 참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된 북한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 하려한다. 6·25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평양이 서울보다 더 잘 살았다고 한다. 전기도 남아돌았단다. 그런데 도대체 왜 북한은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것일까?


북한의 김일성이 등장할 때 했던 말이 바로 “머슴과 지주를 없애겠다”라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약속은 ‘머슴과 지주’가 ‘인민과 당원’으로 명칭만 바뀐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현재의 북한은 97%가 소위 ‘인민’이다. 나머지 3%는 지주를 ‘당원’이라는 말로 이름만 바꾼 것뿐이다.
언젠가 북한 의사들을 중국으로 데리고 나와서 교육을 시켰는데, 3일 정도 지났을 무렵 교육을 받던 북한 사람들이 “이런 것 가르치지 마세요. 우리는 마취할 시약도 없는데 이런 것 배워 봐야 머리만 아픕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 28개의 뇌물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깜짝 놀라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무엇이었을 것 같은가? 돈? 선물? 아니다. 바로 USB였다.


그들은 “남조선 드라마 좀 주세요. 최대한 많이, 가능하다면 지난 것까지도 담아 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걸 가지고 들어가다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총살 아닙니까?” 하고 말했더니, “일 없습니다. 파일 지우고 들어갔다가 다시 파일을 복구시키면 돼요”라고 답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은 평양을 벗어나면 정말 지내기가 힘이 든다. 청진관광여관에 도착했을 때, 북한 안내원이 위대한 장군님이 주무셨던 방을 안내해 준다며 최고 좋은 방을 내어 주었다. 우리는 남의 돈을 모금해 가지고 오니까 제일 싼 방을 달라고 해도 위대한 장군님이 주무셨던 방에서 자라며 호텔의 좋은 방을 내줬다.


목욕도 제대로 하기 힘든 북한의 실상

 

나는 비포장도로만 열 몇 시간을 달려 도착했으니 머리에 흙을 한 삽 올려놓은 것 같아서 목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프런트에 가서 “나 목욕을 좀 하고 싶은데 더운물 좀…” 하니까 “우리가 10분씩 쏴주겠습니다”하며 안내원이 선심 쓰듯 당당히 말했다.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호텔방에 올라와서 7시 5분 전부터 옷을 다 벗고 목욕탕 앞에서 기다렸다. 목욕할 때는 세 가지 장비가 필요하다. 바케쓰(양동이)가 하나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목욕통 속에 있는 물을 잘 퍼내야 한다. 목욕통 청소를 안 해서 밑에 진흙이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찬물은 화장실용으로 미리 받아놔야 한다. 그 다음에 세숫대야 하나 놓고 바가지 갖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영락없이 딱 정각이 되면 물이 나온다. ‘콸콸콸’하고 물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걸 또 빨리 받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녹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관이 너무 오래돼서 그렇다. 그제야 목욕을 시작하는데 또 정전이 되어 버리는 것이 일상이다. 그렇게 되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온 호텔방을 기어 다니며 배낭 속의 플래시를 찾아야 한다. 플래시를 찾는데 3분이 걸리고, 플래시를 가지고 목욕탕에 들어오는데 3분, 남은 3분으로 부랴부랴 목욕을 끝내야 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연희동 공중목욕탕에 갔는데, 당연히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찬물도 더운물도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 쓸 수 있었다. 청진여관의 일이 생각이 나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껏 목욕하는 것이 고맙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다 재벌 같이 산다. 여행갈 수 있는 것, 자기차를 운전 할 수 있는 것,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것, 치킨과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 여름에는 에어컨 켜고 지내는 것 등 우리에게는 소중한 것이 정말로 많다.


이 사실을 우리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중한 것 중 가장 소중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잘 지켜야 한다. 이 나라를 우리가 잘 지켜나가야 되는 것이다.


한참동안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와 어려움으로 여전히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 혼란을 극복해 가고 있다. 사상과 이념, 생각이 다르지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감사함을 가지고 함께 고민하고 마음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닐까.

원문수록 박정희정신 제4호 P235-P241
첨부파일 235-241 특별기고.pdf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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